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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일단 노해라
작성자 billkim
작성일자 2014-10-31
몇 년 전 나는 유럽연합(EU) 내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한 단체(JEAS)의 관계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. EU의 대 동북아시아 정책개발 프로젝트에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.
문제는 시급하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 자기들이 제시한 일정을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. 대신 프로젝트 수행비용으로 비행기 왕복티켓, 호텔비용, 연구비 등 모두 합쳐서 총 2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.
나의 대답은 'No'였다.
 
일정을 체크하고 생각을 좀 더 해본 후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. JEAS 관계자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어서 바로 'Yes'라고 대답해 주지 못했다. 협상에서 상대의 첫 제안에 'No'라고 말하는 것은 협상의 흐름을 내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해주는 마술과 같은 힘이 있다.

간단한 사안이었지만 답을 주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단체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, 이 단체의 프로젝트 발주 방식 등 선례를 알아보았다. 일종의 준비를 한 것이다.

다행히 당시 영국의 어떤 교수로부터 JEAS의 프로젝트 발주 절차나 비용 등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. 보통 이 단체는 프로젝트를 최소 1년 정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추진하는 데, 이번 경우는 EU의 한 기구로부터 동아시아 현안에 대한 정책을 시급히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시간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.

이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JEAS 관계자에게 다시 제안을 했다. 2000만원의 비용 외에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과 호텔비용을 지원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. 상대방이 정한 시급한 일정에 맞추다 보니 오래전부터 약속했던 가족과의 여행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. 가족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트렁크가 큰 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집사람이 정말 행복해할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.

보통 영·미 권에서는 학회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가족을 동반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이들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이런 문의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.

프로젝트의 1차 모임이 끝난 후 자연스럽게 JEAS 프로젝트에 참석했던 중국, 일본, 그리고 유럽 다른 국가들의 참석자들과 저녁을 먹게 됐다. 중국에서 온 참석자는 정부가 추천해준 이번 프로젝트에 참석한 것에 대해 매우 고무된 듯 했다. 프로젝트로 받은 비용 중 많은 부분을 정부에 반납하기는 했지만, 그래도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었다.

일본에서 온 참석자 역시 JEAS 담당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수락했고 그 역시 매우 만족스런 조건이었다고 했다. 다음에도 이 조건이라면 꼭 참석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. 더 이상 이들에게 나의 조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.

먼저 제안하지 마라!

우리는 종종 상대와 협상할 때 누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놓고 고민한다. 상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제안할 수도 없고, 그렇다고 너무 손해를 보면서 제안 할 수 도 없다. 제안할 때 잊지 말아야할 3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.

첫째, 상대가 먼저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.
상대의 첫 제안에는 엄청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. 아마 먼저 제안하면서 가격이나 조건을 너무 낮게 제시한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. 일단 제안을 하고 나면 아무리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첫 제안보다 그렇게 많이 올리지는 못하게 된다. 이럴 때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거래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. 지불방법이나, 기일, 배달 방법 등 다양한 옵션을 개발해 놓아야 한다. 이러한 옵션은 준비과정에서 반드시 체크해 두어야 할 사항이다.

사실, 먼저 제안 하는 쪽이 협상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. 먼저 제안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게 제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. 통계적으로도 그렇다. 실제로 많은 실제 협상사례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을 해 보면 늘 먼저 제안하는 팀이 그렇지 않은 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안해 손해를 보는 것을 알 수 있다.

둘째, 상대의 첫 제안에 'No'라고 한다. 어떤 제안이든지 일단 마음 편하게 'No'라고 말해 보라. 상대는 바로 나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시작할 것이다. 'No'는 상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.

또한 상대가 먼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낮은 가격이나 조건을 제안했을 때, 손을 덥석 잡으면서 “당장 계약 합시다”라고 해서도 안 된다. 그렇게 되면 상대는 “이런, 너무 낮게 제안 했네”하면서,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제안한 조건을 철회하려고 할 것이다.

셋째, 기대치를 높게 잡는다. 협상 전에 가능하면 처음에 원하는 가격과 조건보다 높게 잡고 이를 쪽지에 적어둘 필요가 있다. 이 때 왜 그 가격과 조건을 정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.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상대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. “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다행이다.” “돈을 충분히 받아 좋다.” “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.” “시간이 없다.” 서로 생각하는 목표가 다를 수 있다. 처음 제안할 가격이나 조건 보다 기대치를 높게 잡아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.

그렇다면 먼저 제안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유리할까? 그렇지는 않다. (다음에 계속...)

김성형 박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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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 머니투데이 기고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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